『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리뷰
— 마음의 결을 따라 걷는, 아주 조심스러운 여정
1. 솔직한 감정의 기록이 주는 위로 –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는 깨달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은 너무나도 모순적인 감정에서 출발한다. ‘죽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극단적인 언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 안에도 모순된 생의 욕망이 존재한다. 바로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욕망. 그것은 생존 본능이자, 일상의 기쁨에 대한 갈망이다. 이 두 감정이 한 문장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미 위로를 안겨준다.
이 책은 작가 백세희가 자가진단한 ‘기능하는 우울증’이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겉보기엔 멀쩡하다. 사회생활도 잘 하고, 일상도 유지한다. 하지만 속은 늘 불안하고, 자책과 자기혐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이와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 다만 누구도 그것을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고백은 특별하다. 감정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것은, 단순히 용기를 넘어서 ‘공감’을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책은 정신과 상담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마치 옆에서 상담을 함께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의사와 작가의 대화 속에는, 자신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이 담겨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남의 눈치를 볼까?” “왜 이토록 쉽게 상처받는 걸까?” “도대체 내 감정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이 질문들은 작가의 것이자, 동시에 독자의 것이기도 하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감정’은 종종 숨겨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울은 나약함으로, 눈물은 창피한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 자체로 괜찮다.” 그 말은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내 마음의 골짜기를 누군가가 먼저 비추어준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니까.
2. 일상 속 불안과 싸우는 법 – 우리는 어떻게 버티며 살아가는가
백세희 작가는 상담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상 속 불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단한 사건 없이도, 아주 작은 상황에서 마음이 요동친다. 누군가의 말투 하나, 무심한 표정 하나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 감정을 반복적으로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너무 예민한가’, ‘왜 자꾸 생각이 많아질까’. 이와 같은 고리는 점점 감정을 뒤엉키게 만든다.
이 책은 그 불안의 실체를 파헤친다. 불안은 단순히 외부 자극으로 인한 감정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자기 인식의 왜곡’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작가는 털어놓는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상처, 부모와의 관계, 사회적 기대와 기준.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혀 불안의 토양을 만든다. 작가는 그 ‘원인’을 분석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기 연민을 놓지 않는다. 자기 비판이 아니라, 자기 이해로 향하는 태도가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감정은 나의 일부이지, 나의 전부는 아니다.”
불안, 우울, 분노, 슬픔. 이런 감정들은 삶의 일부일 뿐이지, 그것이 곧 ‘나’는 아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무언가가 내려놓아졌다.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감각처럼 받아들이는 방법. 이 책은 그런 태도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또한 작가는 자신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 상담 속에서 ‘왜 그랬지?’라고 묻는 순간, 무의식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감정이 이름을 갖게 되면, 그것은 통제 가능해진다. 이 과정은 단순하지만 깊다.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이 사실은 ‘이해받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감정의 해석서이자, 심리적 성장의 실마리이다. 우리가 ‘불안’을 조절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단한 처방이나 약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이해하려는 태도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말한다. “나도 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보다 더 진심 어린 조언이 또 있을까?
3. 나를 사랑한다는 것 – 작지만 강한 회복의 기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어떤 극적인 변화나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에게 계속해서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끝이 없다. 하루는 괜찮고, 다음 날은 다시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려는 의지다. 이 책은 ‘회복’이란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준다.
회복은 단순히 상태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조금씩 돌보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회복의 시작은 굉장히 작다. 이를테면 하루 세 끼를 잘 챙겨 먹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 나를 힘들게 하는 인간관계를 조금 멀리하는 것. 이 작은 선택들이 모여 나를 회복시킨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는 점점 더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다. 작가는 말한다.
“지금 당장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하자.”
이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찌른다. 우리는 종종 ‘자기 사랑’을 거창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한다.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미워하지 않는 연습’만으로도 충분히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그것이 진짜 자존감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살 이유를 거창하게 찾지 않아도 된다. 오늘 먹고 싶은 떡볶이 하나면 충분하다." 생존이란 결국 그렇게 작고 일상적인 욕망에서 출발한다.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의 말에 웃을 수 있는 감정, 좋아하는 드라마를 기다리는 일. 이런 작지만 분명한 감정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작은 등불과도 같다.
📌 마무리하며 – 이 책은 누구에게 필요할까?
- 자주 무기력하고 지친 이들
-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날이 많은 이들
- 자기 감정을 이해하고 싶은 모든 이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살아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다만 ‘오늘을 견디는 기술’을 조용히 건네는 책이다. 그 조용함 속에 담긴 진심이, 우리는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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